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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폭력성을 띄는가 - 스티븐 핑커-전중환 대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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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스티븐 핑커(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과학저술가)가 한국을 방문했다.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저자로 널리 알려진 석학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로 꼽힌다.

2016년 5월 스티븐 핑커의 방한을 기념하여 기록한 취재록을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5월 20일 스티븐 핑커와 전중환 경희대학교 교수의 대담을 기록한 내용으로, 스티븐 핑커가 말하는 인간의 다양한 폭력과 그것이 발현되는 근원적인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스티븐 핑커 교수 <출처: ㈜사이언스북스>

우리 안에 악마가 있다

전중환 :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할 게요. 다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한지, 악한지를 놓고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한가요? 아니면 악한가요?

핑커 : 나는 책의 제목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를 선택했습니다. 이건 에이브러햄 링컨의 1861년 3월의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많은 구성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따라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하는 질문에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링컨이 포착했듯이, 우리는 선한 요소도 가지고 있고, 악한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행동은 이러한 우리 마음의 서로 다른 부분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또 이러한 상호 작용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우리는 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격앙되는 일은 있었을망정, 그 때문에 우리의 유대가 깨어져서는 안 됩니다. 신비로운 심금과도 같은 기억은 모든 전쟁터와 애국자의 무덤에서부터 이 드넓은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심장과 가정까지 뻗어 있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들이 다시금 손길을 뻗는다면,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만, 다시 한 번 드높게 연방의 찬가를 울릴 것입니다.” - 에이브러햄 링컨

전중환 : 제 경험에 의하면, 책 표지의 제목만 보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웃음) 제가 만난 많은 사람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오로지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내용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핑커 : 아니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란, 우리 본성에 (선한 것 이외에) 다른 요소도 존재한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내 책 시작 부분에 실린 경구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가! 이 얼마나 진기하고, 괴물 같고, 혼란스럽고, 모순되고, 천재적인 존재인가! 모든 것의 심판자이면서도 하찮은 지렁이와 같고, 진리를 간직한 자이면서도, 불확실함과 오류의 시궁창과 같고, 우주의 영광이면서도 우주의 쓰레기와 같다.” - 블레즈 파스칼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말입니다. 링컨의 표현처럼 인간 본성에 여러 다른 측면이 있다는 뜻입니다. 일부는 선하고, 일부는 악하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우리 사회의 어떤 외부적인 변화가 인간 본성의 더 선한 부분을 끌어내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전중환 : 대부분의 사람은 폭력적인 범죄는 소수의 악당들에 의해서 주로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남다른,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간주되죠. 우리들 대부분은 아주 비폭력적이고, 또 선한 성향을 타고난다고 믿고요.

그러나 당신은 우리 대다수가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그런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폭력성을 타고 난다는 당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어떤 것들인가요?

핑커 : 여러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삶 전반에 걸친 폭력적인 행위를 본다면, 가장 폭력적인 때는 2살 무렵입니다. 이때는 아기들의 절반이 서로 차고, 물고, 때릴 때죠. 자, 이 아기들이 폭력적인 영화를 봤기 때문은 아니죠. 문화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어릴 적 우리들의 자연스런 반응인 것이죠.

우리가 실제로 배우는 것은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법입니다. (배우지 않아도 몸에 새겨져 있으니) 폭력을 저지르는 방법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또 다른 종류의 증거도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한 폭력적인 환상을 가진 적이 있는지 묻는다면, 대다수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해 환상을 가진 적이 있다고 응답합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만, 욕망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또 만약 상황이 변하면, 즉 무정부상태나 시스템 붕괴가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은 그들이 더 평화로운 사회에서는 결코 저지르지 않을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전중환 : 당신은 또 ‘도덕화 간극(moralization gap)’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해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재구성해서 받아들입니다. 이 때문에 똑같은 사건을 공격자, 피해자, 중립적 제3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각각 서사가 달라지죠.

핑커 : 맞습니다.

전중환 : 개인적으로 (도덕화 간극과 같은 편향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이 맞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일본과 얽힌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 시기의 폭력적 범죄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당신도 알다시피 전쟁 때 한국의 여성을 성 노예로 동원한 것 말이죠. 그래서 제가 다른 한국인에게 “일본이 그때 그렇게 한 것도 그 나름의 논리가 있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성 노예,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아마 이 나라에서 저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일반 대중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특히 과학자가 대중에게 어떤 실질적인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핑커 : 우리 적의 입장에서도 나름의 논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그렇지 않으니까요. 역사의 엄청난 전쟁 범죄 가운데 하나인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정당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물론이고 어떤 이유에서 정당할 수 없는 일도 (가해자) 나름의 논리를 분석하려는 노력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그런 상황이 다시 도래하는 것을 막는다면, 도대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유용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서의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유럽에서의 나치 독일의 만행, 그리고 스탈린의 소련과 마오쩌둥의 중국의 경우가 그렇죠.

한 가지 첨언하자면, 앞에서 언급한 도덕화 간극은 서로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상황을 놓고서 다르게 판단하는 간극을 의미하죠. 그러나 또 다른 도덕화 간극도 존재합니다. 때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릇된 쪽이 스스로의 행동을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작은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라!

전중환 : 당신은 ‘약탈적 폭력’에 대해서도 설명했죠.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얻고자 약탈적 폭력을 사용합니다. 돈, 재미, 성적 쾌락 같은 것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약탈적 폭력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로 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기 전에 가해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게 돈을 원하는 경우 하나의 해결책은 그가 내게 해를 입히기 전에 그에게 돈을 주는 것이죠. 사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약탈적 폭력에 의한 범죄를 조장하지 않을까요?

핑커 : 때로는 해결책이 됩니다. 만약 내가 밤에 산책 하는데 누군가 와서 총을 겨누며 “돈 내놔”라고 한다면, 지갑을 주는 것이 최선이겠죠. 물론 사람들이 범죄자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항상 지갑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원치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경찰이 필요한 것이죠. 하지만 때로는 지갑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죠.

마찬가지로 때로는 국제 분쟁에서도 손해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도는 정해져야겠죠. 또 분쟁의 대가를 모면하는 것과 비교해 자원을 포기하는 경우의 비용과 편익의 정도도 가늠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조금 포기한다면 다음번에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요구하고, 더 요구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고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단 하나의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폭력의 피해와 자원 손실의 피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필요는 반드시 있습니다.

전중환 교수 <출처: ㈜사이언스북스>

왜 우리는 복수에 열광하는가?

전중환 : 당신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폭력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대중적인 믿음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이야기합니다.

핑커 : 네, 폭력을 행사하는 많은 범죄자 가운데 상당수는 아주 높은 자존감을 가집니다. 사실 자존감은 폭력의 원인 가운데 하나죠. 그들이 모욕당할 때, 그들의 자존감이 너무 높아서 그 자존감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도전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됩니다. 나르시시즘 또한 폭력을 행사하려는 성향과 연관성이 있고요.

전중환 : 이건 사실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인데요. 당신은 보복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복이란 경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시도를 하려는 경우 심각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요. 보복이 일종의 억제 기제로 진화한 것이죠.

핑커 : 맞습니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에게서 얻은 아이디어죠.

전중환 : 데일리와 윌슨의 <살인>(김명주 옮김, 어마마마 펴냄)에서 그런 주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우리는 종종 나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경우에도 타인이 적에게 보복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낍니다. 복수를 소재로 한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가 그토록 인기를 끄는 것은 그 방증이죠.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핑커 : 그것은 우리가 갖는 대리 만족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허구의 인물과 동일시할 때, 우리는 그들의 입장이 되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약 허구적 인물의 입장에 실제로 있다면 경험할 만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소설이나 영화의 즐거움이 바로 여기서 기인합니다.

그래서 만약 허구의 인물이 폭력의 희생자였고 그 폭력의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다면 또는 보복이 일어난다면, 마치 우리가 실제 그곳에 있는 것과 같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다른 모든 대리 만족과 같은 방법으로, 감정 이입을 하게 되면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얻을 때 마치 우리가 그 여자를 얻은 것처럼 행복함을 느끼는 거죠.

(‘스티븐 핑커-전중환 대담 (2)’편에서 계속)
* 이 대담은 프레시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최재천 | 국립생태원 원장,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오랜 관찰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온 대표적 과학자다. 세계적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그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통섭’ 개념을 국내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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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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