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스티븐 핑커(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과학저술가)가 한국을 방문했다.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저자로 널리 알려진 석학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로 꼽힌다.
2016년 5월 스티븐 핑커의 방한을 기념하여 기록한 취재록을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5월 20일 스티븐 핑커와 전중환 경희대학교 교수의 대담 마지막 이야기로,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스티븐 핑커가 폭력의 감소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 간다.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중환 : 공감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오늘날 공감이 폭력의 주된 억제 기제로서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감이나 동정은 사람들이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원인이라기보다 그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왜 공감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나요?
핑커 : 나는 공감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폭력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때때로 그것은 실제 우리의 우선순위를 왜곡시키기도 하죠.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귀엽거나, 무력하거나, 잘생겼거나, 바로 눈앞에 있는 희생자에게 더 공감을 느끼거든요.
그러나 만약 진정 당신이 최고의 선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 아기같이 귀여운 얼굴이 아닌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 수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폭력으로부터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모든 이들과 우리가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13억 명의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공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전쟁이 나쁘고, 폭력이 나쁘고, 억압이 나쁘다는 원칙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13억 중국인, 10억 인도인, 그리고 5000만 한국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또 희생자가 굳이 귀여운 아기가 아니더라도, 폭력이 줄어야 하고, 전쟁이 줄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천사의 날갯짓을 증명하는 곳
전중환 : 다른 질문을 해보죠. 폭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좋은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이라고 당신은 한 강연에서 언급했죠?
핑커 : 대한민국을 의미합니다. 북한은 엄청난 예외죠. 북한은 정말 전 세계의 가장 주요한 예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중환 : 실제로 대한민국은 폭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당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예입니다.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죠. 이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습니다. 우리나라가 당신의 주장을 잘 뒷받침하는 예라는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핑커 : 대한민국이 폭력의 감소라는 측면에서 진보의 한 예가 되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론 한국 전쟁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시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21세기에 세계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 전쟁을 잊은 거죠. 사망자 수가 300만 명이었던가요? 그것도 하나의 추정치일 뿐이죠. 한국 전쟁은 세계 인구가 지금의 반도 안 되던 때에 일어난 소름 끼치는 폭력이었습니다. 한국 국민은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고, 인류 역사에서도 끔찍한 시기였죠. 그러나 그 전쟁도 끝이 났고, 내 생각에 아마 (다음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놀랄 것 같아요.
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2016년까지, 물론 북한과 남한 간에 전혀 폭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정확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한국 전쟁과 같은 폭력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한국 전쟁이 (폭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예입니다. 또 한국은 군사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했습니다. 그것은 민주화로 향하는 세계 흐름의 일부였죠. 1980년대죠?
전중환 : 1987년입니다.
핑커 : 맞아요. 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한국은 남성이 가족을 지배하는 상당히 가부장적인 문화였죠. 그런데 한국에는 여성 대통령이 있습니다. 미국보다 더 빠르죠. 우리가 좀 보고 배워야겠네요. (웃음) 그래서 나는 한국이, 한국의 역사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보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한국은 낮은 범죄율을 보이죠. 한국의 살인율은 아주 낮습니다. 미국에 비해 훨씬 더 낮아요. 혹시 한국에 사형 제도가 있나요?
전중환 : 네, 공식적으로 폐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7년 이후 2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어요.
핑커 : 그것이 전형적인 역사의 수순이죠. 제일 먼저 국가들은 그저 사형 집행을 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어차피 집행하지도 않는데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고 말하죠.
전중환 : 그러고는 효과적으로 폐지한다는 거죠?
핑커 : 그렇습니다.
도덕성은 어떻게 폭력을 낳는가?
전중환 :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앞에서 했던 질문과도 연관이 됩니다만, 당신은 인류의 행복에 대한 도덕적 감각, 즉 도덕성의 순 기여도가 마이너스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도덕성이 때때로 폭력을 감소시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더 빈번하게 폭력을 증가시킨다고 했죠. 이에 관해 다시 설명해 줄 수 있나요?
핑커 : 두 젊은 남자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를 그려보세요. 둘 가운데 한 명이 상대를 모욕하고, 그 상대가 칼을 뽑아 들고 찌르는 거죠. 마오쩌둥, 스탈린, 히틀러, 제국주의 일본은 꼭 이익만을 위해서 폭력을 저지른 게 아닙니다. 많은 폭력의 원인은 이데올로기, 즉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때문이었죠.
자기가 믿는 신을 비난해서, 동성애자여서, 자기와 다른 신념을 가졌다고 수많은 사람이 사형을 당하는 등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상당수 사람이 도덕적인 이유로 죽어갔죠.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 걸까요? 바로 살인자 즉 가해자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살인자 또한 이후에 착취의 희생양으로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출간된 이후에 나온 앨런 피스크(Alan Fiske)와 타지 라이(Tage Rai)의 『고결한 폭력(virtuous violence)』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도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설문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주장을 더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학자인데, 상당히 많은 문화권에서 상황에 따라 폭력을 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도덕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도덕적 감각이 우리가 실제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 즉 인간의 행복과 좀 더 긴밀히 연결되도록 조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행복이란 생명과 건강과 행복과 번영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부유해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합니다. 또 동성애와 신성 모독에 맞서는 도덕적 반응에 대해서는, 이것들이 나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고 해서 반드시 객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전중환 : 당신은 우리 본성의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이성이라고 말했습니다. (핑커는 우리 본성의 천사들로 ‘감정 이입’, ‘자기 통제’, ‘도덕성과 터부’, ‘이성’ 네 가지를 주목했다.)
그러나 댄 스퍼버(Dan Sperber)와 같은 몇몇 진화 심리학자는 이성이 타인을 설득하고, 나의 주장이 아닌 타인의 주장에서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고자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성이 폭력을 감소시키거나 공정하게 분쟁을 해결하는 기능을 수행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된 것은 아닐 겁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핑커 : 이성이 폭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진화되었다고 주장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역사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의 추론이 나아졌다는 점을 강조했죠.
이는 우리에게 교육, 과학, 토론, 그리고 수학, 데이터, 과학적 실험, 동료 평가와 같은 도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제도들은 우리의 인지와 이성의 능력을 점점 더 객관적으로 올바른 이성에 가까워지도록 만들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혼자서만 사고한다면 논쟁을 이길 궁리밖에는 하지 않겠죠.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두 명이 논쟁하고, 자신의 입장을 방어해 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확실한 기준들을 만족시키면서 논쟁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장은 타인의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는 저널리즘, 교육, 과학,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들을 우리 이성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간주합니다.

스티븐 핑커 사진 <출처: ㈜사이언스북스>
전중환 : 그러면 폭력의 감소는 이성의 부산물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어쨌든 역사에 걸쳐 이성이 폭력의 감소에 기여해 왔다는 것이네요.
핑커 : 그것이 바로 역사가 흐르면서 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계몽주의 같은 역사적 사건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과학 혁명도 있죠. 왜냐하면, 이러한 사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 그 자체만으로는 효과가 그다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으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추론 능력을 향상시켜줄 추론가 집단과 일련의 기준 및 원칙들을 필요로 합니다.
전중환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핑커 : 아니요.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 이 대담은 프레시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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